거침없는 세계사 2편

비스마르크, 독일 통일로 유럽 대륙 장악

1870년 7월 19일,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 하며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비스마르크의 지휘 아래 2개월 만에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당시 프랑스 국왕 나폴레옹 3세는 포로로 잡혔으며, 9월 19일엔 프랑스 파리까지 함락당하고 결국 항복을 선언한다. 당시 유럽 초강대국이었던 프랑스 수도까지 점령한 프로이센은 독일 연방이 아닌 유럽 전체 넘버원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통일 독일(이하 독일)에게도 불안한점이 있었는데 첫째, 프랑스가 다시 힘을 키워 독일에게 보복하는 것, 둘째 러시아와 프랑스가 양쪽에서 동시에 전쟁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은 우선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1872년 삼제동맹), 영국에게는 해외 식민지에 신경 안 쓸 테니 대륙일에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영국도 당시 이른바 '명예로운 고립정책'(Splendid Isolation)을 추진, 이에 동의한다. 

유럽 역사를 뒤집어 놓은 빌헬름 2세

그런데 강대국이 된 독일 내부에선 왜 러시아나 영국 눈치를 보며 식민지 건설을 안 하냐는 세력이 힘을 얻기 시작, 여기에 1888년 비스마르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던 빌헬름 1세가 사망하고 빌헬름 2세가 즉위한다. 문제는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 모든 정책을 뒤집어 놓은데 있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해외 식민지 건설을 멀리하며 대영제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했지만 빌헬름 2세는 영국과 전쟁해 승리한뒤 해외 식민지 건설에 나서길 원했다.

 

1990년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를 전격 해고한데 이어 삼제동맹국중 하나인 러시아와 관계 단절에 나선다. 원래 비스마르크가 가장 우려한 게 프랑스와 러시아를 동시에 적으로 두는 게 아니던가? 기분이 좋을 리가 없던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을(1892년 러불동맹) 맺으며 독일을 압박한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양쪽으로 프랑스와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영국과도 척을 진다. 영국은 앞서 독일이 유럽 대륙의 패권을 쥐는 대신 해군력을 포기한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빌헬름 2세가 그 약속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독일이 해군력을 키운다는건 영국에겐 위협이었다. 

 

독일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은 1904년 프랑스와(영불 협상) 손을 잡았으며, 1907년에는 러시아까지 참가한 '삼국 협상(Triple Entente)이 이뤄진다. 이렇게 유럽은 영·프·러 vs 독일·오스트리아 패거리로 나뉘게 된다. 

1차 대전 도화선이 된 발칸반도

발칸반도는 유럽의 기독교 문명과 서아시아의 이슬람 문명이 충돌하는 길목에 있어 전쟁도 잦고 국가명도 여러 번 바뀌어 복잡하다. 그러나 세계 1차대전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발칸반도지만 보스니아에 대해선 알아야 한다.

 

오스트리아 식민지였던 보스니아는 국민 50%가 세르비아계였다. 때문에 세르비아계 사람들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가 통일하길 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를 둘러보러 왔다가 1914년 6월 세르비아계 대학생에게 총살당한다. 안중근 독립운동가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단일민족 독립을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이 사건으로 유럽이 대학살 현장이 될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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